양궁역사

양궁 역사를 한 눈에 보여드립니다.

기원

인류는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개발하여 이용하면서 제반 욕구를 충족시켜왔고 그 중에서도 생존과 번영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발달해 온 것이 활과 화살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활과 화살은 원시사회에는 생존의 수단으로, 고대와 중세에 있어서는 뛰어난 전쟁무기로, 그리고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한 스포츠 활동으로 인류 문화에 이바지 하여온 유구한 역사적 산물이라 하겠다.

이러한 활과 화살이 어떻게 해서 발명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선사시대의 원시사회에서 용구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자연 발생적으로 생활도구, 특히 사냥 도구로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활과 화살의 기원은 그 유래가 유구하나 그 기원이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원시인들과 직립원인들이 활과 화살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고고학자들이 견해를 같이 하고 있고 “문명의 기원”(G. Child)에 의하면 구석기 시대 말엽(1~3만년전) 경 활을 사용했다고 하며 일부 고고학자는 약 10만 년 전부터 사용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탄력을 응용한 활과 화살이 존재한 흔적은 구석기 시대 말기에 나타난다. 즉 후기 구석기시대에 유럽 남부의 러시아, 스페인, 북아프리카지역 에서 화살촉이 발견되어 활이 후기 구석기 시대에 사용되었음이 증명되고 “대영백과” 사전은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카스테론주 산악지역에 동굴벽화에서 활의 사용을 추정하고 있으며 최근 기네스 북에는 스페인의 중석기 동굴벽화에서 활과 화살이 존재하였음을 증명하고 있어 후기 구석기시대와 중석기 시대에 이르는 사이에 인류의 생활도구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활과 화살의 발달

불의 발견이나 문자의 발달과 함께 활과 화살의 발명은 분명 인류 생존과 번영에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생존을 위한 사냥무기로서의 그 위력은 개인수렵을 하는 형식으로 발달되었고 인류가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고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즉 청동 금속발견과 함께 화살촉의 강도가 높아지고 이후 철기의 발명을 통하여 종전의 수렵용도보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위한 영토확보와 부족간, 민족간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 커지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강력한 전투무기로 발달, 원시사회에서 고대 국가를 건설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특히 원거리는 물론 산악지대와 높은 성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활의 기능은 중요한 무기로 인식되었다. 결국 활과 화살은 원시시대 이후 생존수단에서 고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전투무기로 위력적인 기능을 발휘하게 되고 그 위력은 중세사회 초기까지 정복전쟁에 있어서 절대적 무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화약무기의 등장은 전쟁에서 활과 화살의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기능상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민간의 개인 수렵활동을 통한 생활수단 또는 대중적인 놀이수단의 하나로 명맥을 잇게 되었고 중세귀족을 중심으로 오락적인 스포츠로 전환되면서 중세 말기에 이르러 대중적인 스포츠로 성립되는 배경이 되었고 이는 근대 스포츠의 한 분야로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근대 스포츠로서의 양궁

자연 발생적, 원시적으로 발명되어 사용되었던 활과 화살은 전 세계적으로 걸쳐 각 민족과 지역간 특성에 따라 변형, 발전되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즉 풍토나, 생활환경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가진 활로 개발되면서 활의 생김새나 사용법이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미국의 인류학자 ‘E.S. Morse’가 유형화한 세계 각국의 사법의 유형을 살펴보면 먼저 전 대륙에서 지역의 토착민들이 사용하던 핀치형(Pinch Style - 화살을 엄지와 인지로 잡고 쏘는 방식)과 유럽이나 지중해 인근지역에서 주로 사용한 지중해형(Mediterranean Style - 인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손가락으로 당기는 방식) 과 몽고계 인종들이 주로 사용하던 몽고형(Mongolian Style - 엄지와 인지의 아귀로 화살 끝을 잡고 엄지로만 당기는 방법) 등으로 구분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Archery로 불리며 국제양궁연맹(FITA, 現. WA)에서 실시하고 있는 양궁은 지중해형을 개량 발전시킨 것이다.

양궁이 스포츠로 행하여진 시기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양궁을 스포츠로 가장 먼저 행한 국가는 영국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영국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양궁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행해져 왔는데 “아처리 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의 Henry Ⅶ세 때(1538년) 양궁은 오락용 경기로서 몇 차례 개최 되면서 전 유럽에 스포츠화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1673년 이래 두 번의 전쟁기간을 제외하고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는 매년 양궁대회를 개최하여 승자의 이름을 기록 하였다는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스포츠 양궁의 발생지로 영국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포츠로서 양궁이 행하여진 시기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유럽지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행하여 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후 각 나라의 역사적, 지역적 특성에 따른 양궁은 다양한 경기방식으로 발전하면서 국가와 국가 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기 위한 통합적인 국제적 경기로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양궁 경기는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 처음 개최되었으며 각국의 다양한 경기방식을 하나의 국제 대회로 통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특히 파리 올림픽은 양궁이 국제적 근대 스포츠로서의 성립을 알리고 이후 양궁이 발전하는데 교량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당시 양궁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영국,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웨덴, 미국 등 몇몇 나라들만이 참가하는 소규모 국제대회의 성격을 면치 못하였고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과 1908년 영국 런던 대회, 그리고 1920년 벨기에 엔트워프 대회에서 채택된 후 중단되었고 52년 후인 1972년 제 20회 뮌헨 올림픽에서 경기방식 통합과 규정이 정립으로 재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대 양궁의 규정 변화

양궁의 규정은 세계양궁연맹의 총회에서 결정된다. 총회에서 결정된 경기방식은 2년에 한번씩 홀수 년도에 열리는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기준으로 변경 적용된다. 초창기 단순한 기록 경기였던 양궁은 TV 등 대중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대중에게 좀더 흥미를 불러일으키도록 다양한 변수와 박진감이 넘치는 경기 방식으로 변화 되고 있다.

년도 제목 내용
1931년 합산점수제

제 1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통합부 : 30M, 40M, 50M 합산

1932년 합산점수제

제 1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통합부 : 30M, 40M, 50M 합산

1933년~1934년 FITA ROUND

제 3회~제 4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남,여 부별 구분

남자부 : 30M, 50M, 70M, 90M

여자부 : 30M, 50M, 70M

1935년~1948년 FITA ROUND

제 5회~제 12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장거리, 단거리 경기로 구분 (단, 장/단거리 50M 2회 실시)

남자부 장거리 50M, 70M, 90M /단거리 25M, 35M, 50M

여자부 장거리 50M, 60M, 70M /단거리 25M, 35M, 50M

1949년~1955년 FITA ROUND

제 13회~제 17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1953년 제 16회 대회부터 2년에 한번씩 대회 개최

기존의 방식을 두 번을 쏘아 화살 수 두 배를 쏘는 방식

남자부 장거리 50M, 70M, 90M /단거리 25M, 35M, 50M 각 2회

여자부 장거리 50M, 60M, 70M /단거리 25M, 35M, 50M 각 2회

1957년~1985년 DOUBLE FITA ROUND

제 18회~제 33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1972년 뮌헨올림픽 양궁 채택

1984년 LA올림픽까지 경기방식 유지

미국의 독주가 이어졌으며 소련과 한국의 견제가 이어지던 시기

화살 발 수가 많아 누적되어가며 큰 이변이 없는 경기 방식

1957년~1985년 DOUBLE FITA ROUND

제 18회~제 33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1972년 뮌헨올림픽 양궁 채택

1984년 LA올림픽까지 경기방식 유지

미국의 독주가 이어졌으며 소련과 한국의 견제가 이어지던 시기

화살 발 수가 많아 누적되어가며 큰 이변이 없는 경기 방식

남자부 : 30M, 50M, 70M, 90M 각 36발씩 2회(288발)

여자부 : 30M, 50M, 60M, 70M 각 36발씩 2회(288발)

1987년~1991년 GRAND FITA ROUND

제 34회~제 36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방식 채택

미국이 입상권에서 멀어지고 한국과 유럽이 강국으로 부상

기존에는 기록 합계로만 최종순위를 매겼으나 중간 기록에 의해 선수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변경

[예선] 기록합계로 상위 24명 본선진출
남자부 : 30M, 50M, 70M, 90M 각 36발씩 1회(144발 SINGLE FITA ROUND)
여자부 : 30M, 50M, 60M, 70M 각 36발씩 1회(144발 SINGLE FITA ROUND)

[본선]
1/8 FINAL : 90M, 70M, 50M, 30M 순으로 각 9발 총36발합계 기록 하위 6명 탈락
1/4 FINAL : 30M, 50M, 70M, 90M 순으로 각 9발 총36발합계 기록 하위 6명 탈락
SEMI FINAL : 90M, 70M, 50M, 30M 순으로 각 9발 총36발합계 기록 하위 4명 탈락
FINAL : 90M, 70M, 50M, 30M 순으로 각 9발 총 36발합계 기록으로 최종순위 선정

1993년~2009년 OLYMPIC ROUND

제 37회~제 4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경기방식 채택

2008 베이징올림픽까지 경기방식 유지

올림픽 등에서 TV 등 미디어를 통한 스폰서 광고, 중계방송 및 시청이 중요시 되며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대인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방식 변경 절대 강국이 없이 많은 국가에게 입상 기회 부여

제 38회 세계선수권부터 컴파운드 종목도 정식 종목 시행

[예선전] 기록합계로 상위 64명 본선 진출
남자부 : 30M, 50M, 70M, 90M 각 36발씩 1회(144발 SINGLE FITA ROUND)
여자부 : 30M, 50M, 60M, 70M 각 36발씩 1회(144발 SINGLE FITA ROUND)

올림픽의 경우는 RANKING ROUND 실시 70M 36발씩 2회

본선 개인전은 예선전에서 상위 64명 선발 후 32강까지는 18발, 16강~결승까지는 12발 기록
누적 토너먼트제 실시

2006 양궁월드컵대회를 창설하며 개인전 64강~결승까지 12발 누적으로 통일하고 16발(4발 4엔드)
혼성팀전 시행

45회 세계선수권대회부터 본선 단체전은 16강을 선발하여 24발(6발 4엔드) 기록누적제 실시

2010년~ SET SYSTEM

제 46회 세계선수권대회부터 개인전 세트시스템 시행

올림픽 라운드 토너먼트제를 좀 더 긴강감이 넘치는 세트제 경기방식으로 변화시켜 시행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의 세트승점을 주어 총 주어진 세트승점의 과반을 넘은 쪽이 승리하는 방식 세트제의 시행으로
경기력 외의 다양한 변수로 수상 국가의 다양화 및 깜짝 스타 등장

초기방식은 본선 128강~16강까지는 6발 4세트제, 8강~결승전은 3발 5세트제로 시행하다가 12년부터
3발 5세트제로 통일함. 47회 세계선수권대회부터는 예선전에서 104명을 선발하여 상위 8명은
32강전으로 직행하고 나머지96명은 48강전까지 진행 하고 24명과 상위 8명이 32강전을 치름

컴파운드의 경우 50M 2회의 예선전을 거쳐 15발(3발 5엔드) 토너먼트제 시행

2014년부터 예선전은 70M 2회의 70M라운드로 통일하고, 리커브 단체전 6발 4세트, 혼성팀전
4발 4세트제도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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